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32년 독일 대통령 선거 (문단 편집) == 결과 == ||<-7> '''{{{#FFFFFF 1932년 독일국 대통령 선거}}}''' || || '''{{{#FFFFFF 기호}}}''' || '''{{{#FFFFFF 후보명}}}''' || '''{{{#FFFFFF 정당}}}''' || '''{{{#FFFFFF 득표수}}}''' || '''{{{#FFFFFF 득표율}}}''' || '''{{{#FFFFFF 순위}}}''' || '''{{{#FFFFFF 당선여부}}}''' || || 1 || [[파울 폰 힌덴부르크]] || [include(틀:무소속)] || '''19,359,983''' || '''53.0%''' || 1 || '''당선''' || || 2 || [[아돌프 히틀러]] || [include(틀: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)] || 13,418,547 || 36.8% || 2 || 낙선 || || 3 || [[에른스트 텔만]] || [include(틀:독일 공산당)] || 3,706,759 || 10.2% || 3 || 낙선 || 선거는 예상대로 '''[[파울 폰 힌덴부르크]]'''의 압승이었으나, [[아돌프 히틀러]]가 나치당과 공산당을 뺀 '''모든 정당'''의 지지를 받은 힌덴부르크와 붙어 무려 '''36.8%'''로 40%에 가까운 표를 받아 대선전했다. 힌덴부르크는 대다수의 지역에서 이겼지만, 전쟁 영웅으로 얻은 인기와 모든 정당의 지지를 받은 정치적 후원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50%대 초반에서 40%대 후반정도를 득표하면서 사실상 패배하였다. [[포메른]] 지역에서는 히틀러가 무려 '''52.6%'''를 득표하며 압승했고, 대도시 지역에서도 힌덴부르크는 공산당과 접전을 치르면서 고전했다. [[힌덴부르크]]를 포함한 기성 정치인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불만과 공산당, 유대인에 대한 공포감, 그리고 [[파울 요제프 괴벨스]]의 선동 등이 합쳐져 나온 결과였다. [[에른스트 텔만]]은 1차 선거에서 13%를 얻으며 선전했으나 [[히틀러]]만은 막아야한다는 일부가 힌덴부르크에 투표하고, 또다른 일부가 [[히틀러]](...)[* 사실 공산당과 히틀러의 노선은 극단적 민족주의와 소련에 대한 태도를 제외하면 크게 다를 바가 없었기에 공산당원들 중에 히틀러를 지지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한다.]에 투표하면서 예상보다 낮은 10.2%에 그쳤다. 그러나 베를린과 라인란트 등에서 힌덴부르크와 접전을 벌이는 등 선전하였다. 참패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40%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올린 히틀러의 정치적 입지가 더욱 올라갔다. 힌덴부르크는 대통령 직에 오른 지 1년 만에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했고 이후 대통령직을 [[아돌프 히틀러]]가 받아간다. [[분류:아돌프 히틀러]] [[분류:바이마르 공화국]] [[분류:독일의 선거]][[분류:1932년 선거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